CV   CONTACT  ︎







ARTIST STATEMENT
키마 작가 노트




키마 레코드집 [전시제목 : KIMA record.zip ]
작가노트 (Artist Statement)

지나온 6년의 시간 동안 캔버스에 꾹꾹 눌러 심은 시각적 기록(Records)들이 하나의 폴더에 모였다. 다가오는 9월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하나의 온전한 음반(Record)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아 회화 음반[키마 레코드 집]을 발매한다. 전시장이라는 하나의 물리적인 앨범 안에서, 그동안 그렸던 히트곡 같은 작품들을 '노알람'이라는 무음 신호를 통해 압축 해제하는 자리다.


2021년 어느 여름 날, 삼청동 전시장 안에서 한 관람객이 내게 물었다. “언제부터 그림을 그렸나요?” 그 순간 수많은 시간이 교차했다. 다섯 살 어린아이의 손에 들린 붓에서 시작되어 40여 년간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던 삶의 궤적을 말해야 할지, 혹은 2008년 도쿄에서의 첫 개인전 이후 캔버스에 묵묵히 쌓아 올린 ‘전시의 기록(Records)’들로만 답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이내 나의 대답은 단순하고 진솔하게 흘러나왔다. “아주 어릴 적부터 그렸고, 지금까지 계속 그리고 있어요.” 나의 오랜 여정에 고개를 끄덕이던 그는 바로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제네시스 플라워’는 무엇인가요?”


나는 "태초의 지구에는 꽃이 없었습니다. 온통 초록 식물만 우거져 있었는데 그 많은 식물들 중 하나가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된 거죠. 생각의 끝, 깨달음을 얻는 식물은 스스로 꽃을 피웠는데. 그 지구상에 처음 핀 <최초의 꽃>이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모양과 컬러로 생겼을까?라고 상상하다가 그리게 된 작업이 제네시스 플라워 시리즈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질문과 상상은 새로운 생명의 시작점을 향한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리고 있다'는 재미있게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기억의 지속성'으로 선언된다.









한옥집에서 소우주를 보았다

나의 작업은 우주를 배경 삼아 '삶(꽃)과 자연, 그리고 탄생과 시간'이라는 생명의 궤적을 기록하는 일이다. 우주적 사유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다. 어릴 적 한옥집(Hanok ZIP) 마당을 물들였던 붉은 모란의 잔상 때문인지, 다섯 살 무렵 목장갑 끼고 받아냈던 아기돼지의 경이로운 탄생의 순간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작은 연못 속 소우주를 하염없이 들여다보던 기억 때문인지. 모르겠다.

다만 모든 것이 느리게 흐르던 공간에서 체득한 자연의 감각_손끝에 닿던 딸기의 촉감, 맹꽁이들의 합창, 정원을 가득 채운 꽃향기_은 나의 무의식을 통과해 캔버스 위로 자연스럽게 이식된 게 아닐까.
그때 들이쉬고 내뱉었던 나의 *호흡(hope) 이 노래가 되고 그림이 되어 작품으로 피어난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호흡(hope) 이 노래가 되고 그림이 되어 작품으로 피어난 것”







워킹래빗은 속도 조절 제어장치

그 뒤로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고 나는 '워킹 래빗'을 그려나갔다. 과거의 나는 제어장치가 고장 난 기관차처럼 앞만 보며 빠르게 살았다. 그러다 보게 된 동화나 애니메이션 속 토끼의 모습을 마주했는데.

언제나 세상 바쁘고 지각을 염려하며 늦었다고 소리치고, 잔꾀로 점철된 조급한 존재로 '평면화'된 도상, 미디어가 주로 소비하는 빠름과 꾀돌이라는 토끼의 상(象, Character). 그 가쁜 숨 고르기 속에서, 목적지를 상실한 채 질주하는 앨리스와 유약하고도 분주한 흰토끼의 형상에서 현대인의 초상을 목격했다.

왜 이렇게 뭐든 빨리빨리 원하던지. 나를 비롯해 미지의 공간으로 **'추락(Landing)'하듯 빨려 들어가던 앨리스를 발견한 것이다. 그렇게 <워킹래빗>은 그 치열한 속도전의 한복판에서 멈추어 선 나의 자화상이자, 세상의 미친 속도에 던지는 고요한 브레이크였다.








상반된 요소의 조화로움

"왜 더 신속하고 빨리빨리 살아야 하지?" 나는 토끼라는 친숙한 매체를 통해 세상이 당연하게 여겨오는 견고한 통념에 작은 균열을 내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빠름과 잔꾀가 많다는 고정 값을 비틀어 느리게 살고 빨리 뛸 필요가 없는 존재로, 끌려가듯 주체 없는 연약함의 대명사로 박제된 그들을, 그 통념과 상반되는 개념들을 심는다.

동시에 고대서부터 내려오던 토끼 본래의 "풍요와 재물, 다산의 상징"으로 다시 회복하고 '입체화'시키며 '양면성'을 갖는다. 따라서 많고 많은 동물 중에 토끼는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거부감 없이 유연하고 부드럽게 품어내기에 가장 이상적인 재료라 할 수 있겠다.


게다가 토끼는 자궁이 2개다.
극과 극의 삶을 살며 느끼던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개념들을 토끼라는 하나의 형상 안에 병치함으로써, 기존의 질서를 다정하게 전복시키고 그 틈새에서 발화하는 작은 씨앗을 시각화한다. 이윽고 앨범 속에 맺히는 열매는 감상자 스스로가 각자의 해석으로 수확하는데 관객은 이로써 작품에 완성, 기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 사실 '반대 개념의 동시 존재성'에 대한 물음이 스무 살부터 마음속 깊게 있었다. 나는 작업을 통해 해소하며 답을 찾았기 때문에 상반된 요소나 중의적, 또는 이중적 '본질'에 대한 질문이 지속적으로 작품에 녹여진다. 나도 나를 알아가는 중, 표현의 도구인 셈. 점점'시간(time)과 조화로움(harmony)이라는 개념'을 탐구하게 된다.








내면의 볼륨은 높이고 알람을 끄는 시간

이번 전시는 6년간의 각기 다른 트랙에서 내려온 토끼들이 노알람을 기점으로 내년 2027년 시공간(집)으로 연결될 예정이다.
Walking Rabbits 트랙에서 벗어나 더 빠르게 뛰는 걸 거부했다면, No Alarm은 삶의 속도를 늦춰 마음에 알람을 끄고 비로소 찾은 '평안'을 누리는 토끼들이고, Bigtoria의 목장갑은 피의 계승이 아닌 스스로 일궈내고 쟁취한 승리와 권위다.

즉, 삶을 더 깊게 '누리는 지혜와 성장'을 표현한 작업으로 느린 것이 결코 뒤처짐이 아님을 알게 했다. 실제로 지난 일 년 반, 나는 모든 전시를 내려놓았다. 게다가 '세탁기(빠름과 효율)'를 비워낸 채 노알람의 시간을 살고 있다.

그래서 그런 걸까, 채도가 낮아지며 색 계열이 단색조로 '자연스러운'변화가 일어났다. 이 색감의 단순화와 모노톤의 연주는 모두 노알람의 지휘 아래 완성된 하모니다.


노알람데이즈
는 나만의 템포를 조절해서 누리는 서사이자 연구 대상.논문 쓰고 싶은 노래인것. 27년에 보여드릴 홈(집)은 속도와 시간을 조절해서 누린다음 <회복>하는 공간의 구조를 보려고 한다. 스케치중이다.





"진정한 삶은 서둘러 살아낼 필요가 없어.
차라리 〈의도적으로 지각>을 선택하겠어."

빠른 도착보다 중요한 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아는 것.
조금 늦어도 괜찮아.
나의 속도로 걷는 순간, 시간은 내 것이 되니까.




타인의 알람에 맞추어 질주하는 세상에서 '빠르게 살아내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사회적 통념은 우리 내면의 속도를 갉아먹고, 결국에는 종착지를 향해 조급하게 등을 떠민다. "심연 가득 울리는 알람을 어떻게 끄는 걸까" 그것은 타인의 기준이 아닌 온전한 나만의 템포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나는 시간의 감각을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글자의 형태를 길게 늘려 화면에 배치했다. 이 글자들을 읽어 내려가는 물리적 시간은 곧 작품이 가진 그림의 언어와 일치한다.

<NOALARM>작품을 보며 "노오오오오오오오~~~~~~~~~~~알람" 하고 읽어보라. 감상자가 실제로 읽는 시간과 시각 정보가 일치된다.
<HOPE>도 "호오오오오오오오오~~~~~~~~~~~~~~~~~~~~옵프"라고 발음되며 길게 늘린 희망을 소리 내어 읽는 행위는 시각적 이미지와 물리적 시간을 동치 시키는 경험이 된다. 마치 흘러내리는 시계로 시간의 왜곡을 표현한 살바도르 달리처럼, 나는 글자 배열의 확장으로 시간의 지속성을 은유한다.





"글자의 배열을 길게 늘어뜨리는 것은 나에게 시간의 지속성을 은유하는 행위다.
캔버스 위에서 늘어난 글자의 부피만큼, 평온과 희망이 머무는 시간도 느리게 유예되며 이어진다."







캔버스에 심어둔 지연된 시간의 풍경화.

통념을 벗어던진 시간의 틈새 속에서, 그림 속 토끼들은 눈을 감고 누워 시간과 자연을 향유한다. 바쁜 일상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책을 읽고, 신중하게 음악 선곡을 하고, 차를 마시며, 그림을 감상하는 행위들. 이 느린 행위들은 화면 속 확장된 텍스트와 닮아있다.

캔버스 속 토끼들이 보여주는 고유한 템포는 우리가 '이미' 내면에 소유하고 있었으나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나만의 '리듬'에, 온전한 '몰입'을 연주하는 매개체가 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캔버스에 심어둔 지연된 시간의 풍경이자, 토끼들이 전하는 침묵의 메시지다.

우리가 방향을 잃고 2배속의 삶을 살아가며 맹목적으로 일찍 도달하고자 ‘사색, 즐거움, 감탄’을 희생한 끝에 얻은 것은 결국 허무한 소멸이라면, 차라리 ***<의도적으로 지각>을 선택하겠다. 진정한 삶은 결코 서둘러 살아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 KIMA Record.zip 회화 앨범의 트랙 소개》

Track 01. 제네시스 플라워 2020
Track 02. 워킹래빗 2021
Track 03. 생일이 아닌 날을 축하해 2022
Track 04. 시계 토끼의 뮤직라이프 2022
Track 05. 번역은 필요 없어(필링 허그) 2022
Track 06. 빅토리아 2023
Track 07. 감탄은 아무나 하는 게 아냐 2023
Track 08. 노알람데이즈 2024
Track 09. 키마레코드집.zip 2026
Track 10. 시공간집(ZIP·HOME) 2027





총 10개의 트랙으로 구성된 이 물리적 컴필레이션 앨범 안에, 나는 내 그림과 향기, 그리고 작업실에서 함께했던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고자 한다. 이는 삶을 완전히 유예하거나 뒤로 후퇴하라는 권유가 결코 아니다. 단지 끝없이 재촉하는 세상의 속도를 쉼표로 머무르는 것. 나만의 정당한 속도가 무엇인지 사유해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단 10분 만이라도 내면의 날 선 정신적 알람을 소거하고, 스스로에게 평온의 시공간을 선물하길. 무의식의 콧노래가 다정한 호흡(hope)과 함께 흥얼 거리길.





PIANO : The language called piano

레코드집이라는 '회화 앨범'을 내면서,
음악과 연결된 언어가 흥미로워 몇 자 적는다.
내가 추구하고 느끼는 노알람의 언어가
음악의 언어로_이미_삶의 태도로 담겨있다.

피아노 피아노 "느리게 급할 것 없어 "
아디지오 아다지오 "천천히 편안하게 하자"
안단테 (Andante) "천천히 걷는 산책 "
렌토 (Lento) "느리게, 느릿느릿 속도로 "







[음악은 가능한데 향기는 변환 불가]

♬ The world of intentional lateness ♪"



이 '의도적인 지각의 세계'에는, 이 글을 읽는 화면 안쪽 디지털 세상에서는 결코 대체될 수 없는 회화 같은 절대적인 가치가 존재한다. 음악은 디지털 변환이 가능할지 언정, 캔버스 위 물감의 눅진한 질감과 츄러스 터치, 전시장을 가득 채우는 물리적인 향기는 스크린 너머로 복제될 수 없다.


이번 전시를 위해 나는 어린 시절 한옥집 마당에서 맡았던 그 진한 기억의 향기를 직접 조향했다. 식물 줄기의 싱그러운 오일에 피오니 와 라일락, 그리고 튜베로즈 오일을 블렌딩하여 나만의 '한옥 정원'을 향기로 재현해 낸 것이다. 어떤 향기인지 이메일로 보내드리고 싶지만, 향기는 디지털로 변환이 불가하여 송구스럽다.


서둘러 지나치던 길. 바쁜 일상을 잠시 "피아노피아노" 그래도 괜찮아. 기꺼이 시간을 내어 그림을 감상하고, 시간을 내어 꽃향기를 맡고, 시간을 내어 한옥 지붕과 구름을 가만히 바라보길 바란다. 지금 당장 의도적인 지각(late)을 선택한다. 감탄이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기에. 그야말로 '스스로가' 허락한 느린 시간을 온몸으로 깊게 누리는, 지혜롭고 다정한 하루가 되길 소망한다.


- 끝 -
2026년 8월 15일(토)
키마작가 씀






각주 FOOT NOTE

*호흡(hope) : 오타가 아니며 호흡과 호프의 언어적 유희로 '숨 쉬듯 자연스러운 희망'의 중의적 표현이다. 따라서 한옥집(Hanok zip)도 마찬가지며 빅토리아(BIGtoria) 역시 VIC 승리를→ BIG 큰 성장으로 치환한 것이므로 시적 허용으로 받아 유희를 즐겨주시길 바란다.



**추락(Landing) : 세로로 긴 착륙 작품을 그렸다. 작업을 하며 그것이 '추락'이 아니라 '착륙'임을 깨달았다. 앨리스는 완전히 다른 2개의 세계(하늘과 땅, 현실과 환상)를 연결하는 거대한 이동을 하는데 그 통로가 토끼굴이었다. 앨리스가 토끼굴로 떨어지는 사건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혼란스럽고 빠르게 흐르는 영국의 현실 세계에서 완전히 새로운 규칙과 시간이 지배하는'이상하고 새로운 행성'에 도달하는 과정으로 본 것이다.

나는 앞사람이 뛰니까 무작정 따라 달리는 앨리스가 불안해 보였으나, 점차 속도를 늦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고양이 체셔의 "길을 잃은 게 아니라, 목적지가 없을 뿐이야"라는 질문과 시행착오 과정을 통해 새로운 삶을 향한 도움닫기와 '착지'었다고 본다. 또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까지 얻고 스스로 통제하는 주체적인 각성으로 보여 '착륙'이라 해석했다.






***지각(Lateness) : 평온을 지키는 적극적인 선택으로 뛰지 않아도 되는 토끼처럼 의미가 전복됨. 사회적 시간 궤도안에 토끼들이 경주하는 트랙에서 이탈하는 행위로 통념에 대한 유쾌한 저항의 중의적 표현. 왜 중의적이냐, 지각(늦다)은 지각(깨닫다)과 동음이 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늦게 도달하고 바쁨을 캔슬(Cancel)하며 사는 게 어쩌면 깨닫고 알아차림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나는 의도적으로 지각(Late) 함으로써 비로소 내면을 지각(Perceive) 하게 된다 라는 언어유희적 탐구를 즐기며 그러므로 버리면서 Eliminate,Erase 확장되는 아이러니한 '근원적 양가성'에 큰 흥미가 있다.